계획 방화, 살인범죄

 지난 17일 새벽 4시 25분, 진주시 가좌동 주공3차 아파트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진주에 살고 있는 필자는 당일 아침,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출근한 뒤, 소방서에 근무하는 대학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때만 해도 언론마다 발표하는 내용이 제각이었고, 현장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미흡하던 때였다. 마침 주약동파출소에서 근무 중이던 후배는 이날 처음 현장에 도착해 사고를 수습했다고 했다. 후배의 말을 따르면 십여 년 넘게 소방관생활을 하면서 여태껏 보아왔던 어떤 현장보다도 처참했다고 한다.

사건아파트 현장 내부(단디뉴스/진주경찰청 제공)

 후배의 말에 따르면 범인은 대피하는 사람들 중 노약자, 여성만 잔인하게 공격했는데 주로 목을 노렸고 피해자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고 한다. 후에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일이지만 피의자 안 씨는 평소 윗층에 사는 여고생을 자주 괴롭혔는데, 층간소음의 문제인지 정확하진 않다. 아무튼 여고생은 숙모와 함께 살고 있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이날 안타깝게도 숙모와 함께 희생당했다.

 처음 언론에서는 조현병에 의한 우발적 묻지마 방화, 살인으로 보았는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범인 안 씨가 치밀하게 이 범행을 계획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다. 정작 불은 보잘것 없었다. 휘발유로 범인이 자기 집 하나 태운 꼴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일종의 몰이였던 게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피의자는 무언가 망상 때문인지, 윗집과 이웃들에 앙심을 품고 있었고 이들을 나오게 하려고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것이다. 4층의 피의자 집에서 불이 나자, 위층의 조카, 숙모는 물론, 아파트 주민들이 대피하기 위해 뛰어나왔고 2층 엘리베이터 앞에 도사리고 있던 피의자는 준비해 둔 칼 두 자루로 피해자들을 공격했다. 덫을 놓고 사냥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의자 안 씨(한국일보)
  
 따라서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충동장애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라 볼 수 없다. 그러면 이 자의 잔혹성, 치밀성, 과단성에 이미 징후가 있지 않았을까? 왜 예방하지 못했는가?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렇다. 이미 수 차례 이웃과 분쟁이 있었고 폭력시비, 전과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 

 조현병은 적절한 치료와 상담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신질환이다. 이렇듯 그 증세가 심해지면 그 폐해가 개인의 일신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질환의 경우, 공동체가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단순히 인신을 구속하거나 감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과감하고 공격적인 치료를 진행하도록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 이웃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받을 리 만무하다. 특히나 정신질환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현실에서는. 그래서 보건당국이나 지자체 복지 관련 공무원들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교양하고 관리해야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파괴하는 반사회적 범죄와 어찌 그 무게를 가늠하겠는가. 
  
 반사회적 범죄기에 이것은 지극히 사회적인 문제다. 사회 공동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피의자는 고립된 개인이었다. 상태가 저 지경이 되도록 방치된 것에는, 이미 여러 징후를 통해 주변에 알려졌음에도 방치된 것은, 이 사회의 문제요 책임이다. 희생자분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끔찍한 사고 하루 전이 416세월호참사 5주기였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사람들을 적어도 여기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현장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 문화, 경제, 모든 것의 전반을 면밀히 따지고 톺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함께 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고민을 이제는 다 함께 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삼가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빈다.
 안전한 곳에서 영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