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악양 최참판댁
진주에서 외곽도로를 타고 가다가 희망교를 건너 진양호, 하동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봄 햇살이 따사로운 토요일, 우리 가족의 가족 봄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천 완사를 지나자 낯선 길이 나왔다. 십여 년 공사 중이었던 걸로 아는데, 그 길이 이제사 뚫린 듯 했다. 새 길을 타고 가보기로 한다. 가을 코스모스축제로 유명한 하동 북천을 지나자 새로 뚫은 터널이 나왔다. 새 도로가 좋기는 했지만 굳이 교통량도 많지 않은 이 길을 이렇게 넓히며 산을 깎고 논을 메울 필요가 있었을까, 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생각보다 이르게 섬진강이 나타났다. 그리고 교각이 보이며 순천으로 갈래, 하동으로 갈래? 하고 묻는 듯한 표지판이 보였다. 아내와 나는 적흥적으로 순천을 선택한다. 그리고 곧 후회한다. 다리를 건너 산비탈을 넘자 새길이 거기서 끊긴 것이 아닌가. 굉장히 불괘했다. 안내판 하나 정도만 두었어도 그런 적흥적인 선택은 안했을 터이니. 차를 돌려 다시 돌아오며 투덜투덜.
다시 다리를 건너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국도 중 하나라는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벚꽃은 절정을 넘어 낙화하고 있었다. 섬진강을 왼편에 두고 하동읍을 지나 구례방면으로 제법 올라가다보면 갑자기 오른편으로 확 트인 들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 악양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까지 아이를 안고 올라갔다. 십여 년 전과 너무 달라진 풍경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산사면에 자리한 고즈넉한 마을이 너른 들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시골마을이었는데, 이제는 소설속 최참판댁이 자리하면서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되어있었다. 사실 나는 최참판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만들어진 십여 년 전 와보고는 발길을 끊은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따옴표 안은 최참판댁을 다녀온 후, 내가 쓴 페이스북의 글이다. 대충 어떤 감정인지 짐작이 가리라.
"최참판댁은 마음에 안 들었다. 처음 평사리를 찾았을 때 그 고즈넉함이 너무 깊이 각인 되어 있다, 내겐.
낮은 지붕들과 구불텅한 골목길, 돌담들. 그 소박한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평사리 들판은 너른 만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낮은 지붕과 돌담은 가난이었으니까.
낮은 지붕들과 구불텅한 골목길, 돌담들. 그 소박한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평사리 들판은 너른 만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낮은 지붕과 돌담은 가난이었으니까.
허구인 최참판댁이 들어서고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감은 깨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가난에 이 정도 착취자는 있어줘야 이야기의 균형이 맞아 떨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낱 허구가 철저하고 처절한 현실을 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토지를 끝까지 읽지 않았다. 너무 지루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사실 작가의 역량이다. 재미 없는 책을 내가 왜 끝까지 읽어야 하나. 결국 읽었던 분량에 바친 시간까지 아까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지.
뭐 박경리의 문학을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께 실례인지 모르겠다만, 한글을 영위하는 숱한 대중의 시간을 그만큼 빼앗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인지, 재고할 필요는 있다. 제발 그만 좀 빨아댔으면 한다. 잠재적 독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좀 드물어지게...
아무튼 내게 그 정도인 작품이 문단의 상찬 속에, 그리고 그렇게 얻은 권위로 대중의 찬양 속에 이렇게 현실로 툭 튀어나와 버린 꼴, 그 예쁜 마을을 파괴한 모습, 싫지 않았겠나. 이젠 입장료까지 당당히 받더만. 거 무슨 문화재라고. 초기에 가봤을 때, 순 날림으로 지었더만.
평사리에 십수 년만에 봄나들이 갔다. 그 어색하던 최참판댁도 세월의 손때가 타면서 그곳에 퍽이나 어울리는 공간이 된 모습을 발견한다. 이제사 나는 현실화된 최참판댁과 화해가 가능할런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마을이 그렇게 변한 모습은 여전히 내키지 않으나 이미 그곳은 많은 상인들의 삶과 숱한 관광객들의 추억을 담은 곳이 되어있었다. 그런 것을 내 편견으로 폄훼할 수는 없다. 이제 그곳은 토지만의 최참판댁이 아닌 게다.
마침 큰들의 공연도 한 마당 펼쳐졌다. 아이는 공연에서 얻은 태극기를 들고 아장아장 걸었다. 이제 내게도 최참판댁은 '우리 람이 태극기 들고 걸었던 곳'이 되었다. '가륜이가 큰들 공연을 재미있게 본 곳'이 되었다. 기쁜 일이다. 오래 서먹하던 친구와 화해한 느낌이다.그래도 오래 서먹했던 일은 쉬 안 풀린다. 자주 만나는 수밖에 없다. 좋아하던 아이들 얼굴을 생각하며 자주 드나들 결심을 한다."
최참판댁은 문화재도 아닌지라 이렇게 마루에 일반인이 오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십여 년의 세월동안이 이렇게 흘러서였을까, 마루, 기둥 등은 사람의 손때가 타 퍽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 아이들도 최참판댁 대청마루에 손때 하나 묻혔다.
세월 따라 변한 것들도 많았지만 최참판댁 누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악양의 들과 섬진강은 여전했다. 지난 세월, 꺼렸던 마음이 몹시 미안할 정도로.
다리쉼을 조금 한 뒤 우리는 간단한 요기를 하고 악양을 벗어났다. 조금은 이른 귀가에 아내와 큰 아이가 아쉬워했다. 모처럼 나선 나들이인데 너무 쉬 끝내는 것 같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해 가까운 순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아내가 순천국가정원박람회를 들러보고싶다고 말하곤 했던 것도 떠올랐고.
주말이라 차가 좀 밀려 짜증이 났지만 진주가 가까운 도시라고 50%할인을 해줘, 마음이 풀릴려는 찰나, 주민등록증을 먼 주차장에 두고온 사실이 떠올라 다시 우울해졌다. ㅎㅎ
일단 지금은 국가정원을 추천드리고 싶지 않다. 튤립을 빼고는 꽃들이 아직 다 피지 않아 볼 것이 별로 없었다고나 할까.
사진은 느낌 대로 네덜란드 정원 전시장이다. 국가정원은 개장시간도 현재 오후 6시까지여서 시간도 좀 촉박한 느낌이 있다. 먼 데서 오시는 분들 참고하시라. 야간 개장은 5월부턴가 하는 것으로 안다.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좋으리라.
아무튼 하루만에 돌아본 나들이치고 알차게 보낸 느낌이다. 너른 곳에 애들 풀어놓고 맘껏 봄볕, 봄바람 만끽하게 했으니 더 바랄 것은 없다. 다음에는 지리산 언저리 어딘가로 가볼 계획이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